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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2/21 우연히 만나는 옛날 (2)
서늘한 아침 어쩌다 길에서 만나는 옛,날.

10년이 훨씬 더 지난 옛 길위에 서있구나 싶어서
그 허무로 가득했던 그 날의 발등을 밟고 걸어봤다.



없는 실력을 스스로 잘 알고있었으면서도
화실 원장의 꼬임에 넘어가서 덜컥 레벨높은 대학에 원서를 집어넣고는
당연하게 톡 떨어졌다.
뭐, 1년만 더 하면 거기에 갈 수 있을테니 시험삼아 쳐 보랬던가.
재수할 동안의 화실비는 받지 않겠다고 수를 썼던건,
아마도 명문대에 학생 한 명 정도는 보냈다는 간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화실 청소 당번였던가.
화실원장을 탓할 이유는 없다.
사실 나로써도 쉰 꿈을 꾸고 있었던 거니깐.
서로 짝짝꿍이 맞았을 뿐.

그렇게 입시를 치르고
같이 시험치른 친구(실력이 나보다 한 수 위였음에도
덤덤히 한 수 아래의 대학에 원서를 넣은)녀석의 집에 들어누워
진종일 영화와 음악에 대해서 노가리를 풀고
지쳐 잠들려 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녀석의 합격을 알리는 전화였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던 대학,
누구 보다 축하를 던졌어야할 우정.
그 모든걸 버리고 알 수 없는 암울한 독기가
어금니 사이에 질끈 물렸다.
그렇게, 그대로 말없이 누워서 잠들었던 것 같다.

재수아닌 재수로 시간만 소진하며 지내던 날
단과학원을 땡땡이 치고
어김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한강 둔치에 나갔었더랬다.
매일 만나는 한강둔치는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의 담담함을
내게 안겨줬던 것 같다.

멍하니 시간을 죽일 줄 아는 노련함도...





바람차던 강변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도.
난 참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하구나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한데 말이지...
라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질감 같은걸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1. 흠~ 2004/12/22 03:30 수정/삭제/ 댓글

    합격자 발표 후에.
    엇갈리던. 우정에 대한. 생각이 나네요.
    합격한 사람은. 합격한대로.
    아닌 사람은. 아닌대로.
    어색하게. 겉 돌던...

    아마 처음으로.
    "끼리끼리" 라는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2. akgun 2004/12/22 06:04 수정/삭제/ 댓글

    녀석이 절 위로해 주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아차 하면 더한 독이 될 수도 있는거니까요.

    제 사춘기가 시작되던 시절이라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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