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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17 축제에서 생긴 일 (5)

그야말로 사람의 산 사람의 바다였다. 하늘은 흐릿했고 구름은 몇 방울의 비까지 흘리고 있었지만 이미 흥분제라도 투여받은 듯한 사람들의 축제에 빠져드는 마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로를 통제한 탓에 택시로는 더이상의 이동이 불가능해 보였다. 차 안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에어콘 바람을 맞고 있느니 사람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그 물결에 휩쓸리는 걸 선택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천천히 걸으며 축제의 중심점으로 빠져드는 맛도 있을 듯하여 서둘러 요금을 정산하고 내린다. 그리곤 문이 채 닫이기도 전에 물세래를 받는다. 뼛속까지 한기가 스미는 얼음물이었다. 아무리 더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흐릿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고 있어서 기온은 낮은 편이었고 방금까지 냉장고 같은 택시안에 앉아있었던 탓에 머리부터 끼얹어진 물은 숨이 탁 멎을 듯한 냉기였다.

정신을 차리며 젖은 내 꼬라지 몰골을 내려보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얼굴에 온통 회반죽이 발라진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축제 속으로 빠져들지는 몰랐다. 축제에 합류하는 순간에 이미 몰골은 몇 시간 질펀하게 논 모습이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수없는 축복의 손길(적어도 그런 의미로 시작은 됐을 것이다)을 받는다.

사람도 차량도 심지어는 검은색 아스팔트도 이미 회반죽으로 잔뜩 뒤덮인 탓에 뻘밭에라도 나와있는 기분이다. 거리 곳곳에 놓이 대형 스피커에서는 쉴새없이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축복을 쏟아 부으며(너 나할 것 없이 그들은 이미 축복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춤인지 취기의 흔들림인지 구분키 어려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무리는 어느 쪽으로 걸어도 벗어날 수 없을 듯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축제의 중심점은 한 덩어리의 묵같았다. 100여미터 정도 되는 3차선 도로의 한 블럭을 사람들이 꽉 틀어 막고 있어서 전체가 한 덩어리로 흐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묵처럼 흘렁흘렁 흘러서 그 짧은 골목을 벗어나는 데에만 두 시간은 족히 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흥이 나 있었고 그 느릿한 흐름속에서도 갖가지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며 서로에게 축복의 손길을 보낸다.

골목을 벗어 났을 때 - 젤리속에서 뽁 하고 튀어나온 포도 알갱이 처럼 - 일행이 내 허리를 가르키며 놀란 눈을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다 봤더니 배 아래에 돌려맨 힙쌕의 지퍼가 열려 있어서 그 안쪽에 담긴 비닐 봉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세 칸으로 구분된 쌕의 지퍼 중 두 개의 지퍼가 활짝 열려있고 그 중 한 칸에 담겨있던 비닐봉지가 보이지 않는다.

소매치기!!

앞뒤로 둘러서 있던 일행들 틈에서 어떻게 요란한 소리가 나는 비닐봉지를 통채로 빼어 갔는지 그 기술력에 탐복;;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비닐봉지에 얼마전에 잃어 버리고 재발급받은 휴대폰이 들어있었고, 가장 많이 가지고 다니며 찍던 아끼던 카메라(그래 그 Lomo lc-a !!! ㅜ.,ㅜ)가 들어 있었고, 지갑이 들어 있었다. 방금 산 질레트 면도날 만원어치는 생각하지도 말자.

카메라는 선물받은 것일 뿐더러 휴대하기 편한 탓에 언제 어느때나 가지고 다니던 녀석이었고 요 며칠동안 찍은 사진은 잔뜩 기대를 품고 현상을 기다리며 담겨있었었었었었다.
지갑에 현금은 많지 않았고 카드는 바로 사용정지 신청을 했지만 문제는 그 지갑의 의미다. 올 2월 초에 선물받은 지갑을 불과 두 달 사용하고 홀랑 잃어버렸으니... 그 안에 선물받을 때 함께 받은 5천원 신권도 고스란히 사라졌;;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선물한 분께 뭐라 죄송하다 해야할지...



그래, 이 띵똥아!
로모카메라의 가치를 네놈이 알 턱이 없으니 3살 먹은 네 조카의 장난감이 되어있지 않으면 다행이고 (그게 왜 다행인데?), 지갑은 악어가죽인 것이 검증된다면 뒷골목 시장에서 유통 될것이고(네놈 수준에 그 지갑은 그저 번거로움 이겠지), 5천원 신권은 네 방 콜렉션이 되어있을 게 뻔하고(그게 2006년형 5000씨씨 스페셜 컬러 특별 한정판 대한민국 신권이란거다 이자식아!!), 휴대폰은 심카드만 버리고 암시장으로 흘러 들겠지.
마지막으로, 와서 면도기 가져가라. 형 손잡이는 필요없다.

잊지 않겠다. 이 나라 4월의 축제!!
  1. BlogIcon oopsmax 2006/04/17 18:53 수정/삭제/ 댓글

    전 어제 지갑 선물했는데에...
    악어가죽은 아니었어요. 안에 휘황(?)한 신권이 들어있었던 것도 아니고,, (oopsmax ≠ "띵똥")
    어딘가로 (빠져) 들어갈 땐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한다니까요.
    쉽진 않겠지만 잃어버린 것들 잊어버리고 힘내세요. (일등 도장 요망;)

  2. spitart 2006/04/17 23:40 수정/삭제/ 댓글

    한국인의 소행이 아니기만을...

  3. 2006/04/18 03:19 수정/삭제/ 댓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4. zapzap 2006/04/18 10:28 수정/삭제/ 댓글

    쿠아아아아~~~~
    소매치기하다 걸리면 죽을걸 각오하고 턴것인가! 어떻게 AKGUN의
    외모를 보고도 감히 소매를 치지!?

    암튼, 안습..

  5. BlogIcon akgun 2006/04/18 12:46 수정/삭제/ 댓글

    oopsmax// 어딘가로 빠져 달어 갈 땐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만큼 재미가 덜 하겠지만요. 문제는 제 정신을 홀딱 빼어놓을 만큼 매력있는 장소를 선호 한다는 건데요(누구나 그러려나?) 아무튼 확실할 경험이었습니다.

    spitart// 설마 그러기야 하려고... 여기선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모른 척인데..

    비밀댓글// 재밌는 아이디에요. 꼬리뼈를 다쳤던 기억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zapzap// 걸렸다면 최소 성형수술이지. 그래서 더 이가 갈린다.
    딱 걸렸어야 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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