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는 게 단순히 뱉어내는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말이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도 할테다.
Lomo lc-a plus 랑싯 퓨쳐파크에서...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했을 때, 처음 몇 달 간은 제대로 말도 못했었다. 무슨 말만했다하면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하던일 멈추고 빤히 쳐다보는데, 내가 무슨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커서 개그맨이 될 놈'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까불까불거리던 내게 여러모로 변화를 준 시간이었는데 그 때 내가 구사하던 시골말 '사투리'라는 것이 서울말인 '표준어'속에서 꽤나 고생을 했던 거다.
"축구꽁;;이 아니고 축구공 이거든?!"
덕분에 말은 혀끝에 닿기 전에 목 안에서 한텀씩 쉬게 되고 뱉어지는 수도 확연히 줄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각과 판단도 달라지더라. (그래서 개구맨이 안 됐다는 건 아니고!)
비슷하게는 두벌식 자판을 쓰다가 세벌식으로 바꿨을 때도 마찬가지.
손가락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고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자판의 구조가 사고 자체를 필터링하는 느낌이랄까.
Minolta X700 아유타야에서...
태국에 살면서 태국어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우선은 급한 게 영어였던 탓이다.
결국, 일년 반이 넘는 태국 생활동안 이만큼이나 살고 있는 나라의 말을 모르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반성과 그동안 만나던 태국인들한테 살짝 미안한 맘도 생긴다. (솔직히 영어도 안되고 태국어도 안 되고 이게 뭐야...ㅜ.,ㅜ;;)
그리고 요즘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는 태국어는 참 이들의 생활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태국어에는 한국어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특징이 성조가 다섯 단계까지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듣기에 같은 단어라도 어떻게 높낮이를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섯개의 다른 단어가 된다는 얘긴데.
예를 들어, "스와이" (가와이~ 아니고!!)라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는 단어지만 억양을 앞에 놓느냐, 중간에 놓느냐, 끝에 놓느냐, 등등에 따라서 '아름답다'와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뒤를 높여 읽으면 아마도 아주 나쁜 뜻이 되는 것 같더라.
한국어 처럼 성조가 없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독학이 어려운 이유다.
말이 좋아서 '앞을 높여, 뒤를 높여'지.. 이게 절대음감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단어마다 음율이 있으면 이걸로 어떻게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있었다. 어쩌면 중국인들의 날카로운 콧소리가 울리는(엥~엥~) 전통음악과 비슷한 음악이 여기에도 있는 이유가 그 성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의 큰 특징이 '조사'가 거의 없다는 것.
태국어에는 이 조사가 (거의) 없어서 말 만들기가 아주 쉽다.한국어의 조사에는 병립을 나타내는 ‘와 ·과’, 소유를 나타내는 ‘의’, 목적 ·대상을 나타내는 ‘을 ·를’, 주격을 나타내는 ‘은 ·는 ·이 ·가’, 장소를 나타내는 ‘에서’, 그 밖에 ‘에게 ·에 ·보다’ 등이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남"은 물이라는 태국어
"폰"은 비 라는 태국어다.
"똑"은 떨어지다
"막막" 은 많다
이 네 단어만 가지고 쉽게 표현이 가능해진다.
"남 막막" 하면 뜻 그대로 물이 많다.
"폰 똑"은 '비, 떨어지다'니까 비가 내린다(온다)는 뜻.
비가 많이 온다라고 말하려면 '많다'라는 뜻의 '막막'을 붙여서 "폰 똑 막막"하면된다.
"폰. 똑. 막막."
"비. 떨어지다. 많다."
"비. 떨어지다. 많다."
대충 보면 우리말이나 별반 차이 없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조사의 우리말 쓰임은 상당히 까다롭다. 외국인들에게 '한글'과 달리 '한국어'가 배우기 어려운 이유는 까다로운 조사의 쓰임때문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이 조사로 우리는 전혀 다른 의미를 쉽게 만든다. '비가 내린다', '비는 내린다', '비를 내린다' 는 다 다른 의미가 된다.
심지어 '비와 내린다'라고 하면 비랑 박진영이랑 비행기에서 내린;; (에데데)
근데 이들은 쉽게 아무런 변형없이 단어 단어를 그저 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폰. 똑. 막막
비, 떨어지다, 많다,
하하하 ^.,^;;
이 말이 "비가 떨어진다 많이" 처럼 순식간에 우리말로 인식되어 별반 차이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역시 조사의 쓰임에 그만큼 익숙한 탓일거다.
우리말에도 이런식으로 단어만을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명사가 될 때인 것 같다. 축구하는 공이란 의미로 '축구공'이 되듯이 (꽁에 관한 아픈 기억이;;)
조사도 없는데 이들은 오즉하겠나
"남폰" '물'과 비를 붙였으니 빗물.
심지어
"남똑" 하면 '떨어지다 + 물'로 "폭포"란 명사가 된다.
Lomo lc-a plus 무앙액 집근처에서...
언어가 생활습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생활에 언어가 영향을 받은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겠지?) 이들의 평소 생활태도와 이들의 말이 상당히 닮은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을 갖는다.풍부한 자원과 사철 변화없는 따듯함(무더위가 맞지만)... 덕분에 이들은 까다로운 격식보다는 그저 편하게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결론,(씩이나?)
자신의 생활태도를 바꾸고 싶다면, 말하는 방법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격식차리는 게 싫고 조금더 자유롭고 싶다면 말도 너무 또박또박하려하지 말고 대충 해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틀을 깨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틀에 박힌 생각인가? -.,-;;
더해서 정치인들 욕 할일 많아지는 때인데 좀 나긋하게, 뭐 좀 자알 돌려서, 또뭐 그렇다고 날카롭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고.... (결론을 이상한데 가져다 붙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입에 달렸던 욕을 제 뺨때리기 해가며 고쳤던 적이 있다. 이미 욕이 습관이 되어있기도 했지만, 같은 일에도 욕을 뱉어내지 않으면 확실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뭐, 세상에는 욕 말고는 해줄게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게 문제지만;; (오~ 조사 '는'자의 쓰임좀 보라지 -.,-;;)
뭐, 세상에는 욕 말고는 해줄게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게 문제지만;; (오~ 조사 '는'자의 쓰임좀 보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