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즈음이었나. 신문사에 다니는 후배들을 만나면 '돗자리 신문'이란 얘기로 놀리곤 했었다.
"돗자리 신문을 이제 돗자리로도 못 쓰게 되는구나.."
볼 것 없는 신문들 쓰임새라고는 바닥에 깔고 앉을 때 외에는 쓸일이 없는데, 그 조차도 가운데를 붙여서 발행하니 불편해졌다는 비아냥이었다. (아마 모스포츠 신문이 그때쯤 가운데가 붙었다(?)고 광고했었지)
그리고는 신문들의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색 이야기들...
발끈했던 후배가 신문은 정치색을 띄는 것이 당연하다. 어떻게 색깔이 없는 신문이 존재하겠느냐
...라는 반론에 뜨끔하여 이후에는 돗자리라고 안 했다. 왠지 그럴듯한 얘기였거든.
신문사 마다의 색깔이 있다라는 얘기, 그게 다양하면 좋은 세상이란 얘기...
나름 느끼는 바가 있기도 했지만,
그때는 나 역시'고급지'란 개념이 정리되지 않아서 반론할 꺼리가 없었던 탓도 있다.
특별기고 44년 기자의 新 新聞論
우리나라 신문이 非신문적이란 지적. 공공성 없이 오로지 상업적이란 지적. 선정주의, 기자 무책임, 이상 권력... 도가 지나치다.
사설이 정치색을 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그리고 특정인이 편집국장으로 있는 한 신문이 어떠한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신문은 신문임을 포기한지 오래된 듯 보인다.
고급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문이기는 하자.
99년에 접었던 돗자리 다시 깔아야겠다.
한겨례가 최근 '고급지'로의 변화를 선언했던데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