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땐 화장실 앞이었다. 손에는 녹차 티백이 담긴 유리컵이 들려있다. 아마도 냉녹차를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식수용 정수기는 반대편에 있는데 왜 이쪽으로 걸어왔을까.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그 꼴을 바라보던 최군의 표정이 의아하다. '그 사이를 못 참고 바지에 지렸나?' 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화장일 입구에 서있는 나를 아래위로 ㅤㅎㅜㅀ어본다. 정수기 앞으로 가야 할 몸이 왜 냄새나는 화장실에 있는건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컵을 씻으러 온거라고 변명하기엔 깨끗한 유리컵안에 담긴 마른 녹차 티백이 너무 선명하다. 뒷통수 박박 문지르며 돌아서는 수밖에. 그러께(재작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에 기억력이 몹시 나빠졌다. 처음엔 암산이 불가능 하더니 몸이 완전히 회복된 지금에도 머리는 여전히 원상복귀되지 않는다. 아마도 IQ가 두자리 숫자로 떨어졌지 싶다. -_-;; 사고당시 머리가 아스팔트에 심하게 충격을 받으면서 두개골 속의 뇌가 한쪽으로 급히 쏠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뇌가 두개골 표면과 밀착됐고. 이때 자극을 받은 좌상단의 뇌 주름이 보톡스 맞은 이모 여인의 이마처럼 쪼악~ 펴지게 되었다 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IQ 수치가 급락! 스스로 몹시 애처롭게 '뇌의 외부자극에 대한 표면적 변화와 그로인한 뇌 용적률 변화에 따른 건망증과 IQ의 상관관계'를 논문형식으로(그게 뭔데??) 궁리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정수기 물통 위에 주인을 잃고 다소곳이 놓인 칫솔과 라이타를 발견한다. 누군가의 건망증 (담배 한 대 피우고 이 닦자)의 결과가 거기 놓여있는걸텐데. '사고로 머리 나빠져도 남들의 보통 수준과 비슷해졌을 뿐이야'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네시간 후에... 아까 만든, -오래두어 닝닝하게 데워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