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을 애독한다. 하루 30분 이상 시간을 내서 꼭 정독하고 있다.
물론, 하루 중 빈둥거리는 시간은 그보다 훠얼씬 더 길다.
오늘 존레논의 일화에 관한 기사가 <어제의 오늘> 코너에 실렸다.
아직 300타가 안 나올 세벌식도 연습할 겸 전문을 타이핑할까 하다가 순간 바보같은 짓임을 깨닫는다.
경향신문도 인터넷 싸이트가 있을테고 지면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이미 있을텐데 뭘...
[어제의 오늘]1966년 존 레넌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 발언 <링크>
오랫동안 이 블로그를 지켜봤거나 온라인 밖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시다시피 난 불교에 가까운 무교다. 군대에서 불교 군종병이었지만 그냥 땡땡이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불교를 감싸고 있는 친숙한 공간들, 기와지붕과 나무마루, 향내음... 풍경소리 등등에 더 익숙할 뿐이다. 아마도 십자가가 그런 공간에 걸려 있었더라면 좀 더 기독교 교리가 내 마음에 편히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존 레논의 저 발언이 정작 유럽보다 미국에서 이슈화 되었다는 것, 우리의 기독교 문화가 미국식(?)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예언(?)은 증거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사과해서 당신들이 행복해진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라는 그의 멘트가 재밌다.
“나는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들 모두 안에 있다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그 노인네가 아니라….”
"그 노인네"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낄 분들은 많겠지만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들 모두 안에 있다고 믿어요"라는 말에는 이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알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몸을 던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또 안타깝고.
난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좋아라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개신교
"하늘에 있는 그 노인네"라는 말에 불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그들의 말씀이 나랑 안 맞기도 하고,
그들 교리가 인간의 이기심, 인간들 갈등에 일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으로 시작해서 기독교의 교리로 끝나는 이 글의 위험성을 어찌할꼬... -.,-;;
물론, 하루 중 빈둥거리는 시간은 그보다 훠얼씬 더 길다.
오늘 존레논의 일화에 관한 기사가 <어제의 오늘> 코너에 실렸다.
아직 300타가 안 나올 세벌식도 연습할 겸 전문을 타이핑할까 하다가 순간 바보같은 짓임을 깨닫는다.
경향신문도 인터넷 싸이트가 있을테고 지면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이미 있을텐데 뭘...
[어제의 오늘]1966년 존 레넌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 발언 <링크>
오랫동안 이 블로그를 지켜봤거나 온라인 밖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시다시피 난 불교에 가까운 무교다. 군대에서 불교 군종병이었지만 그냥 땡땡이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불교를 감싸고 있는 친숙한 공간들, 기와지붕과 나무마루, 향내음... 풍경소리 등등에 더 익숙할 뿐이다. 아마도 십자가가 그런 공간에 걸려 있었더라면 좀 더 기독교 교리가 내 마음에 편히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존 레논의 저 발언이 정작 유럽보다 미국에서 이슈화 되었다는 것, 우리의 기독교 문화가 미국식(?)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예언(?)은 증거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사과해서 당신들이 행복해진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라는 그의 멘트가 재밌다.
“나는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들 모두 안에 있다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그 노인네가 아니라….”
"그 노인네"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낄 분들은 많겠지만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들 모두 안에 있다고 믿어요"라는 말에는 이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알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에 몸을 던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또 안타깝고.
아! 다 적고나서 보니 "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들 모두 안에 있다고.." 믿어서는 신이 너무 많아지게 되는 걸까?.. -.,-;;
난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좋아라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개신교
"하늘에 있는 그 노인네"라는 말에 불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그들의 말씀이 나랑 안 맞기도 하고,
그들 교리가 인간의 이기심, 인간들 갈등에 일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으로 시작해서 기독교의 교리로 끝나는 이 글의 위험성을 어찌할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