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

Note/Collection 2004/11/23 03:34
스무 살 때 이병우를 만났다.
이병우는 기타를 잘 쳤지만 영화이야기를 많이 했다.
서로 간에 닭살 돋는 말을 주고받는 성격들은 아니어서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치기어린 마음에 내가 영화감독이 되면
네가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 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 날이 오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이병우의 연주와 음악을 들어왔고
그때마다 황홀해 했고
이병우의 음악을 내 영화에 쓰면 얼마나 근사할까?
하는 생각으로
스무 살 때의 약속을 되새기며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날이 왔다.

내 영화에 이병우의 음악을, 이병우의 기타연주를 쓰게 되었다.
이병우는 메모리즈의 삭풍이 부는
메마른 신도시의 한 켠을 촉촉하게 적시였고
장화,홍련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스스로를 황폐화 시키는
소녀의 휑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만약 이병우의 음악이 없었다면 슬픈 기억의 원혼과 죄책감에
병든 소녀를 위로하지 못햇을 거다.

이병우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을까?

이번 음반은 뒤늦게 배달된 연서 같기도하고
메말라 가는 마음을 도닥거려주는 연풍같기도 하다

아마도... 내 손에 이 음반이 들어올 때면 연애편지를 받은 사람처럼
후다닥 내 방으로 달려가 들 뜬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보겠지.

스루 살 때의 꿈과 약속이 아름답고 근사하게 이루어졌다.

2004.6. 영화감독 김지운






이병우는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공통된 마음을 갖게 하는 것같다.
스무 살 때 이병우에 빠져들어
지금껏 그의 앨범을 연애편지 뜯어보듯 들뜬 마음으로 만나고 있으니...

더 가자면,
내가 혹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면 꼭 그의 음악을 쓰고 싶다. 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이성강 감독도 같은 마음으로 '마리 이야기'를 부탁했을 것이다.

또 다른 그의 팬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겠지.
그가 만들어낸 기타선율이 모두의 마음에 탐이날 정도로 남는건지도...


영화의 내용도 비쥬얼도 음악도 모두 좋았다.
염정아의 연기는 단연 최고!

'언제쩍 얘길 이제서야 ?'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속지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마지막으로 어릴 적부터 지각이 몸에 베어 있어, 늦었지만,
이 앨범을 기다려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함께 이 음악을 두 손으로 받칩니다.
2004.6 이병우'



| ♬장화,홍련 OST -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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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경 2004/11/23 09:15 수정/삭제/ 댓글

    음악 너무 좋네요

  2. 2004/11/23 12:57 수정/삭제/ 댓글

    저 이노래 참 맘에 들어서 벨소리도 받았었어요
    ^^
    음악을 참 좋아해서 평소에도 많이 듣는데
    이 노래를 들을땐 마치 짝사랑을 하는 사람을 본 것 같아요
    맘이 두근 거려요

  3. akgun 2004/11/24 05:42 수정/삭제/ 댓글

    에필로그라고 하지만...기본 멜로디는 영화의 도입부 부터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곡인거죠. 그때그때 다른 악기의 느낌과 편곡으로, 다른 이름으로 영화에 삽입되고있는데요.
    '차가운 손'으로 '어두운 복도'로 '우는 달'로 '숲은 알고 있다' 등으로 말이죠.

    저도 이병우의 음악이 이렇게까지 주류가 될지는 몰랐어요.
    -뭐 딱히 주류라는 표현은 좀 그렇습니다만, 어떤날의 멤버로 솔로 기타리스트로 영화음악 감독으로 지금은 뮤직도르프의 대빵인 것같던데; 그렇게 20년을 변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그의 기타멜로디는 변치않는 울림이 있어서 좋아요. 놀라운 것은 그가 맡았던 전작 '스캔들'에는 전혀 그의 기타연주가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그의 음악, 그가 갖고 있는 울림은 여전히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 영화를 못 본채 OST만 가지고 있어서 -_-) 한 명의 기타리스트가 정말 음악감독으로 충분한 역량을 보이고 있구나 하는걸 알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영화계의 중요멤버가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이쯤되면 아쉬운 건 이상은 아즘만데;;
    일본에서는 영화음악을 맡은 적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영화 전반의 흐름을 주도하는 음악 '감독'이 되지는 못했죠. 리채아즘마도 화이팅해주면 좋으련만 ^^;;

    언제 불 환하게 켜 놓으시고 '장화,홍련'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좋아요.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고, 무엇보다 공포영화 로써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는게 좋죠. 그 '사다꼬' 닮은 귀신이 화면에 직접적으로 출연하면서도 계속 공포를 관객의 마음에 긁어준다는데 놀랍더라구요. 지금도 소름이 쌰악~
    여전히 OST를 켜 놓은 채 답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요. 방금 '메마른 도시' 라는 곡이 흘러 갔어요. 이병우의 일렉기타 선을 긁는 흉측한 소리죠. 끅. 끅. 끅. 끄끅;; 거리는... 그 다음곡은 다시 그의 감성적인 멜로디가;; 이래서 더 공포스럽게 되는 건지도. '메마른 도시'는 장화,홍련의 삽입곡이 아니고 '메모리즈'라는 김지운 감독의 다른 영화의 삽입곡인데요. 분위기는 장화,홍련의 암울한 테마와 비슷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도배왕!! 환영입니다. 표현이 예사롭지 않으시네요. 단문이라고 표현하시는 저 몇줄에 저렇게 많은 묘사가 들어있다니 놀랍습니다. ^^;;
    남도 끝으로 여행이라도 가고 싶어지는....

  4. akgun 2004/11/24 05:54 수정/삭제/ 댓글

    옘/ 승경/ 그렇죠? 사랑스런 감정이 가슴아래에서 나플거리는 것 같어요.
    콧속에도 착 달라붙어서 콧노래하기 좋구요. ^^;;

  5. 김수경 2004/12/03 20:13 수정/삭제/ 댓글

    이부분을들을때면
    수미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요.
    그 마지막 장면..
    생각할수록 너무 슬픕니다.
    벌써 4번이나 봤는데 볼수록 새로워요.
    낼 당장 ost 사야지.^_^

  6. akgun 2004/12/04 00:34 수정/삭제/ 댓글

    4번이나 보셨다니...
    이 영화의 정체는 공포영화가 아녔던가요? -_-;;

  7. 천하 2004/12/04 20:44 수정/삭제/ 댓글

    너무 좋아해.장화홍련영화.
    아이들의 옷가지 하나하나,벽지무늬까지.
    저 음악과 호숫가의 아이들 장면까지.

  8. akgun 2004/12/05 02:44 수정/삭제/ 댓글

    이 영화의 정체는 그렇구나.
    내게도 그 호숫가의 씬은 참 따듯하면서도...
    공포영화의 시점을 잃지않는 연출이라고 느껴졌었는데.
    단순함의 힘일지도...
    작혹한 피와 소녀의 절규, 애정이 잘 뒤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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