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Nirvana - Something In The Way /
"서울서 왔으면 인라인도 탈 줄 알것네?"
위아래로 꼼꼼히 살펴보던 관리인 아저씨,
'바이크 좋아보이누만~' 으로 이야기를 꺼내더니 '탄광을 좀 둘러 보려고요' 로 운을 띄우는 내게
댓뜸 인라인 탈 줄 아냐는 물음으로 말을 막는다.
"아, 네! 조금요..."
말꼬릴 흐릴 틈도 없이 돌아서는 아저씨.
"그럼 나 좀 가르쳐 줘봐" 라면서 뒤축뒤축 어디론가 가신다.
사실 아저씨라기 보다는 '할아버지' 에 가까운 외모다.
검게 그을린 피부는 골 깊은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칼은 아직 억센 기운을 풍기며 꺼칠 하지만 색은 히끗히끗 바라고 있었다.
허리까지 조금 구부정한 모습이다.
그런 분이 혼자서 인라인을 배우고 계셨던가 보다.
"이런 촌 구석에서 누구 가르쳐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건네는 인라인은 조심스럽게 탄 흔적이 역력하다.
"발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웬만한 신발을 신기에는 큰 발이지만, 건네는 아저씨의 손길이 무안할까봐 신어본다.
꼭 끼지만 참고 몇 번 돌아 볼만은 하다.
" 일단 기본을 익히셔야 하는데요. 발 양끝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항아리 모양을 그리는 ..."
" 허헐;;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인라인 좀 가르쳐 드린 댓가로
탄광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다.
휴일였던 탓에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허가 없이는 외부인을 들여 놓지 않는단다.
탄광의 시설물들이 모두 위험스런 탓이다.
아저씨의 안내로 조심스럽게 둘러본다.
이 시설물은 지하 600m 아래로 연결 되어 있다.
산 허리를 반듯히 뚫고 들어가는 갱도만을 생각하다 이건 좀 의외다 싶었다.
아래로 깊이 파들어간 상태에서 수평으로 탄을 캐고, 그걸 다시 끌어 올리는 시스템인 듯.
이 열차(?)들이 4 칸씩 지하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쪽으로 해서
이리로 올라서면 케이블이 지하 600m 아래로 이동시키게 된다.
지하로 내려가는 곳은 깊은 우물처럼 바닥을 볼 수 없었다.
여러 가닥의 케이블이 어둠속으로 발을 내리고 있을 뿐.
아저씨 말대로 정말 떨어진다면 이곳저곳 철골에 부딪혀서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탄을 실어나르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차량들.
인부들도 이걸 타고 이동한다고...
작은 포크레인과
작은 자전거.
검게 탄을 둘러쓰고 뛰어 놀 아이가 떠오른다.
친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삶의 흔적을 따라 조심스럽게 다가가 본다.
검은 탄으로 된 세상.
한때의 위용처럼 우뚝 서 있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는 탓에 외로워 보인다.
모든게 오래된 기계라는 느낌이다.
디지털화 되기 이전의 메카닉같은 느낌.
풍차의 톱니바퀴 이상은 아닐 것 같은, 증기로 가는 터빈이상은 아닐 것 같은 착각.
레일을 타고, 탄은 사북역까지 흘러간다.
근묵자는 흑이라.(近墨者黑)
어디에도 검은 탄가루들...
틈으로 흘러내린 탄이 수북히 쌓여있다.
가벼운 탄이 쌓인 탓에 빠지면 푸욱 잠긴단다.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는 아저씨.
탄광의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지지대, 버팀목으로 쓰이는 나무들.
위로는 사북역까지 연결된 레일.
아래로는 오래된 전기 열차.
실재로 조작해서 이동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간단히 전극을 바꿔서 앞뒤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무쇠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가볍고 조용히...
12B 라는 이름을 갖은 녀석.
한사코 촬영은 싫다며 도망다니시는 아저씨.
이런식으로 말고는 촬영 불가능.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더랬다.
이녀석도 그런 아저씨만큼이나 오래 이곳에 있었을 터다.
탄광을 좀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휴일날의 아저씨를 땡볕에 더 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다음에 평일날 찾아온다면 위에 허가를 맡아서 일하는 모습을 촬영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아저씨.
감사하다는 말, 건강하시라는 말, 인라인 연습 꾸준히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다시 태백을 향해 달리다가
"추전역" 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급히 유턴한다.
어디선가 낯익은 역 이름이다.
뭐야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ㅡ.,ㅡ;;
그..그..그렇다. 그래도 추전역이다. (노출값을 어찌 잡은거냐)
추전역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해발 855m 고지에 있는 역으로 눈꽃열차가 지나면서 이름이 알려 진 듯.
고도 855m를 지나는 기차.
겨울이면 미끄러워서 쉽게 올라올 수 없다고.
때문에 열차가 앞뒤로 붙어서 밀고 끌고 다닌단다.
뜻밖에도 이곳 역장님이 라이더셨다.
발칸 750 을 갖고 계셨는데, 자주 타지는 못하신단다.
덕분에 쉽게 말이 통했다.
열차가 하루 두 번 - 오며 가며 한 번씩만 서는탓에 역은 작고 조용했다.
이런저런 얘기와 맛있는 - 700당구의 대학교수라는 아주머님이 타주신 커피도 마시고
숙소도 소개해 주셔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추전역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좋은 기억이 머무는 역.
갈치조림집에 들러서 저녁식사 해결.
집무실 분위기의 독특한 인테리어를한 집이었는데, 사진이 여의치 않다.
숙소에 도착.
바이크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4륜차와는 다르게 이녀석은 정말 '같이 힘들여서' 여행한다는 느낌이다.
이만큼 일치감이 큰 이동수단은 없을거다.
말을 탄다면 이런 느낌보다 더할지도 모르겠군;;
내일을 위해
더운 심장을 식히렴.
/ 태백이야기 [둘러 머물다] /
/ lomo LC-A , eos 630 , X-700 /
/ kodak gold 200 , Fuji reala 100 / film scan /
/ by akg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