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Note/Talk-Talk 2004/10/22 15:45
날이 제법 차졌다.
차게 자는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한여름이 아니고는 항상 두툼한 이불을 덮는편이다.
푹신하고 도톰한 이불이 몸을 감싸 누르는 느낌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잠결에 으실한 느낌이 싫어서 여름에도 그늘잠을 잘 자지 않을 지경이니까 성격도 참 지랄맞다.


이때쯤의 시골 내방은 불을 넣기 시작할 때다.
시골집은 방마다 아궁이가 있기 마련인데
두 방을 한 아궁이로 쓰는 특이한 방이거나,
아예 불을 넣지 않도록 설계된 골방이나 대청마루가 아닌다음에야 다 이 아궁이를 한개씩 갖고있다.


들의 나락 베기가 끝날 때 쯤, 길마다 나락말리는 멍석이 그득히 펼쳐지고
밤새 찬 서리가 내리면
아궁이에도 불을 넣어야 한다.
매일 귀찮은 아궁이 불때기가 시작되는거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계속되는 아궁이에 불 지피기가 만만찮게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겨울밤에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렁이는 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행복해서 졸립다.


불이 작아지면 짚이나 장작을 더 넣어주고
방금 넣은 짚이나 장작에 약한 불이 잘 들러 붙지 않을 때는
부지깽이로 아랫불을 살짝 들어올려주면 확 하니 불이 살아난다.
아궁이 끝 구들장으로 빨려 들어가던 불길이 가끔은
푸~ 침을 내밷듯이 아궁이 밖으로 불을 뿜을 때가 있다.
아궁이 안에서 빨간 불손이 슬쩍 나오더니 졸던 이마를 어루만지고 들어가는거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정신이 번쩍들어 뒤로 물러서 보지만
이미 앞 머리칼을 불손에게 뺏긴 후다.
노린내가 난다.



여름동안 불을 넣지 않다가 아궁이에 첫 불을 넣을 때는 조심해야하는 것이 있다.
간혹 불덩어리가 달려나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는데
이놈이 잡히지 않으려고 쌓아놓은 짚단 안으로 숨어들어버리면
큰 불을 낼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이 말썽많은 불덩이의 정체는
아궁이속에 살면서 불과 연기를 관장하는 불의 신 '화둥이"란 놈인데
첫 불을 넣으면 이녀석의 장난;;
같은 소리는 그만하고...ㅡ.,ㅡ;;
다름아닌 쥐다.
여름내 열어둔 아궁이속으로 쥐가 들락거릴 수도 있는데
이녀석이 미처 못 나오고 그 안에 숨어 있다가
불을 지피게 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이된다.
연기가 구들장 밑에 가득차고 굴뚝으로 빠져 나올 때 쯤엔
급기야 불을 뚫고 아궁이 밖으로 튀어 나올 상황이 되는거다.
불덩이가 아궁이속에서 화다닥 뛰어나올 때의 당혹감이란;;



컴컴한 밤
아궁이 속에서 나오는 불빛만을 받으며 쪼그려 앉아계신
붉은 색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듯 졸고계신
머리에 수건 얹은 할머님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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