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 말에 전학 온 '지나'는 코 찔찔거리던 시골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쩌면 '도회적'이라는 그 미묘한 매력에 끌리는 지금의 나는 그때 이미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각인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폐교가 된 그 국민학교는 이미 그 시절부터 위기였는데, 한 학년에 두 반이 있던 것 조차 점차로 학생 수가 줄면서 6학년이 되면서는 한 반만 남게 됐고, 그 행운 덕에 지나와 짝꿍이 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지나와 짝꿍이 아니고 지나'도' 짝꿍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은데. 남아선호사상이 아직 결과를 보이지 못했던 탓인지 반에 여자애가 더 많았고 덕분에 키가 큰 나는 짝찌가 세명이었;;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만난 지나는 뭔가 야릇한 기쁨에 들떠 있었다. 애써 감추는 듯 하면서도 대놓고 드러내는 그 새침함. ...이 끝없는 도발이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고
조금 재촉했을때, 도덕책 속에 숨겨진 편지를 살짝 보여주었더랬다. 물론, 페이지를 넘기다 우연히 들킨 것처럼.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눈치 백단!인 내가 그것을 놓칠리 없었고, 누구와 바람이 난건지 잔뜩 독이 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지이나아는 누구누구랑 연애한데요~'를 떠들기 시작했고, 울먹이던 그녀는 편지를 갈갈이 찢어버렸드랬다.
그쯤에서 사과하고 끝냈어야 했다. 기어이는 편지를 찢게 만들었으니 그쯤에서 끝냈어야 했다.
...만 잔뜩 독 오른 나를 멈추기엔 난 아직 어렸고 모험과 도전정신이 충만했다.(상관없나?)
그 갈갈이 찢긴 편지를 모아서 퍼즐 맞추기를 한 후, 기어이 그 바람난 바람을 일으킨 진짜 범인을 찾아냈었다.
그리고는 그 찢긴 편지처럼 둘 사이를 짝짝 찢어 놓았었었었더랬다. (장하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지나는 그때 이후로 성장이 멈춘 듯 자그마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새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예의 야릇한 미소를 띄더니 내게 한 마디 건낸다.
"너, 그때 나 좋아했다매?"
역시 사람은 타고 나야한다. 예나 그때나 자존심 박박 긁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