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마지막 날, 2007년의 반을 넘기며 의미있는 사건 발생.
토요일 저녁, 한국에서 들어 온 손님이 있어서 방콕 시내로 식구들 모두 외식을 갔더랬다.
간만에 단체 외출인지라, 영양 보충차원에서 씨푸드집에 들러 왕새우 좀 드시고.. 다음은 빡빡한 한국의 삶을 정화시키는 릴뤡스 방콕 밤문화 체험을- 이게 쪼꼼 화끈화려하다.(쓸데없는 생각은 마시고!!!)
나야 이미 질렸;; 기도 했지만, 신경써서 운전을 한 탓인지 초저녁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열이나기 시작. 클럽에 앉아서는 얼음이 든 콜라잔을 이마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고만 앉아있다. 앞에서 스트립 비키니 차림의 댄서가 춤을 추든 뭘하든 신경쓸 상태가 아녔다. 급기야는 클럽 종업원한테 아스피린 두 알 얻어먹을 지경까지 갔었다. 그 번쩍거리는 클럽에 앉아서도 콜라만 두 잔 시켜 먹었을 정도로 심했던 두통이 약을 먹으니 좀 가시더라. 역시 양약은 여러모로 화끈하다. - 그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거지만.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 쐬주나 마시자며 한인타운에 들러 족발 사들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반.
주차를 끝내고 식구들 맨 마지막에 붙어서 현관을 들어서는데 뭔가 이상하다.
나갈 때와 상태가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식구들은 눈치를 못 챈 것인지 다들 거실까지 들어가 있다.
"어? 이게 왜이래? 도둑 들었다!!"
현관 안쪽의 창문이 살짝 열려있고 방범창살이 안쪽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 창 앞에 놓아둔 의자와 장식단도 밀려있고...
서둘러 집안을 둘러본다. 나 역시 후다닥 2층 내방에...
방안 이곳저곳을 뒤적인 흔적이 있다. 옷장이 열려있고, 모든 서랍이 조금씩 열려있다. 신경질이 확 밀려온다. 어차피 너저분한 방이었으니 어질러진게 화난 건 아니고... 어떤 *** **이 허락도 없이 남의 방을 헤집고 다닌 생각을 하니 내가 우습게 보였나 싶기도 하고... 뭐 어쨌든, 심호흡 한 번 하고 찬찬히 둘러보는데 딱히 뭔가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가진 것도 없잖아!!)
문제는 보스의 방. 열 파티이상, 파티사냥 필수.(이럴때 농담이 나와?!)
침대옆에 놓여있던 금고가 통채로 사라졌다. 그리고 핸드폰이 든 손 가방 하나.
평소에는 2층 거실, 현관, 담장위의 등을 켜놓고 외출하는데 이날은 오후 4시경 출발하는 관계로 불을 안 켜놓고 외출 한 것이 화근.
더욱이 이 날 밤은 심하게 비가 와주신 덕분에 놈들한테는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찬찬히 다시 둘러보니 다른 방은 뒤진 흔적이 없고, 오직 (열렙할 수 있는) 보스방과 내방만 착실히 사냥하고 퇴장. 금고와 보스의 손가방 그리고 내 팜이 없어졌다.
재밌는 것은... 이 집에는 금고와 그 안에 든 물건(?)이 제일 값이 안 나간다는 것.
거실에는 풀셑 골프가방이 있었고, 사무실로 쓰는 거실 옆방에는 iMac 24인치와 17인치 각각 한대, 맥북 한대. 후지츠 노트북, 무수한 IBM 데스크 탑들, 각종 첨단 장비들...
팜이 없어진 내 방은 뭐 값 나가는 게 없기도 하지만, 그 팜과 같이 세워져 있던 PSP는 손도 안 댔다는 게 신기... 아마도 팜이 핸드폰인 줄 알았던 것인지 착실하게 충전라인까지 걷어 갔더라.
예상컨데 두 명 이상이 들어야 했을 금고를 털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봤을 것이다. 그러니 무리하게 - 이 집은 더 둘러봐도 나올 게 없다(사실이다;;) -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 게도, 어렵게 금고를 연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난다. 다음에 금고 사면 개구리 인형이라도 하나 사서 넣어놔야겠다.
덕분에 '태국의 CSI 과학 수사대'를 직접 알현할 기회가 되었으니.....
오늘의 교훈. 돈을 집에 둘 때에는 나처럼 허름한 박스에 넣어서 너저분한 책꽂이 한편에 대강 던져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