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먹먹한 눈이 잠깐 스쳤을 뿐.
내내 평소의 모습으로 친구들 하나 하나에게
그 선한 웃음을 짓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녀석을 다시 봤을 때가
영등포 어느 지하 술집구석의 쪽방이었다.
피곤한 모습에도 그 특유의 텁텁거리는 웃음을 내뱉으며
호기좋게 냉장고에 가득한 맥주를 꺼내오던 녀석.
"술은 얼마든지 있으니깐, 먹고 죽어라. 걱정마, 내가 여기 지배인 아니냐!"
밤에는 웨이터로 낮에는 학생으로 지내는 녀석에게
안쓰러움보다는 우리들 젊은날의 치기가 훨씬 많았었다.
술, 담배, 여자...그런 얘기가 오고가기에 그곳은 더없는 장소였다.
오랜 객지 생활이 익숙한 녀석은
고생스런 어린 시절의 회상이 싫었던지
시골집에 대한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았더랬다.
누런 상복에 대나무 지팡이를 든 체
평소와 같은 농담을 건낸다.
온기잃은 아버지가 한 삽 한 삽 흙속에 잠기실 때에도
녀석은 언제나와같은 눈빛을 친구들에게 보낼 뿐이다.
그 눈빛 한 켠에서
녀석이 지금 울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꼭 오늘이 아니더래도
녀석은 언젠가 한없는 울음을 쏟아 낼테다.
작년에 먼저 보내드린 어머니에 대한 눈물도 함께...
| 김광민 - 내 마음에 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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