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까 생각이 나네.
그녀...작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걷던, 비를 맞지 않으려고 바짝 다가서던, 습기를 머금어 매끈거리던 어깨, 우산속에 은근히 풍기던 샴푸향기...

따위가 생각나는 건 아니고.
아~ 비가오니깐 꾸리꾸리하다.

몇달 전 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 기분이 좋았었나봐. "씽~잉 인더 뤠인~♬ 음~음..음..음..음" (가사를 알리 없다) 을 콧노래로 부르며 빗길을 걸을때는 나름 기분이 업된 날이었으니까. 발 아래 동그라미를 쉼없이 그려대는 빗방울도 좋았었지.

아파트 주차장을 지날 때, 그 차를 발견했어. 운전석쪽 유리창이 유독 투명해서 눈의 착각인가 싶어 지나쳤다가...다시 몇걸음 뒤돌아서서 차 창에 손을 대 보았지. 쑤욱 하고 창에 닿아야할 손이 한참을 더 들어가더니 핸들에 닿는게 아니겠어?!
어느 얼치기 운전자가 이 빗속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문을 잠그고(어이쿠) 편안히 집에 앉아계신거겠지. 상당한 고급차였는데 말이야. 차 안은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고 떨어진 낙엽까지 시트위에 찰싹 달라붙어있어서 정말 우울한 몰골이었지.
몇 초동안 그 꼴을 감상하고 있었어. 차 안쪽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주면서...

앞 유리에 메모된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 차 안쪽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주면서...

"여보세요? 3749 차주되시죠? 운전석 창문이 활짝 열려있어서요."
"...네?"
"네...!"
"정말요?"
"('정말이냐고?? 음...생각해보니 그런걸로 장난전화를 할 수도 있겠구나. 재밌는 아이디어네...') 네!!"
.

감사하단 얘기는 아마 못 들은 듯 하다. 이후에도 고맙다는 전화 같은 건 받은 기억이 없다.- 이 어린 녀석도 나처럼 '발신자추적써비스' 따위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너무 큰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거나...

몇년만의 선행이었던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 '기록'까지 해놨지 않은가.


비가 오니까 '수채화 같은 내 마음'이 한껏 물에 번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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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원양 2005/09/09 12:48 수정/삭제/ 댓글

    세상에...
    평소에 착한일을 얼마나 안하면 이런걸 착한일이라고 올렸을꼬?
    세상에...

  2. BlogIcon akgun 2005/09/09 13:07 수정/삭제/ 댓글

    세상에...
    평소에 악한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걸 어떡하나?

  3. raw 2005/09/09 13:48 수정/삭제/ 댓글

    왜 물을 조수석으로 한바가지 ~ 물을 드시오~

  4. bambam 2005/09/09 17:25 수정/삭제/ 댓글

    넘넘 착해요~ 헨폰 요금 아까워서 전화 안함...

  5. BlogIcon oopsmax 2005/09/09 17:47 수정/삭제/ 댓글

    관찰력, 마음 씀씀이, 실행/결단력 모두 좋아 보이십니다,, 차주가 아낙;이었다면 낭만 드라마를 한 편 찍었을 수도,, 아쉽. '_' 서둘러 뛰쳐나온 아낙(=차주) 옆을 지키는 악군, "차 안쪽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주면서..."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

  6. BlogIcon 연이랑 2005/09/10 04:18 수정/삭제/ 댓글

    비오느날이니 선행이네요 ^^
    전 미등 켠논 차 연락해준적 있어요...>.<

  7. BlogIcon akgun 2005/09/10 23:19 수정/삭제/ 댓글

    raw// -_- 무슨 말쌈인지 도통 이해를 못;;

    bambam// 사실 그 요금 때문에 조금 망설인것이 사실입니다.

    oopsmax// 오옷! 역시 드라마는 그.렇.게 시작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워쩐지 제 인생은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군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같은 것은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마저도 열정이 식어버린 지금에선...

    연이랑// 전 라이트 켜 놓아서 베터리 방전 된 적이 있지요. 시동 거느라고 아주 죽을 뻔..;; 300kg이라는 무게를 실감하게 되지요.

  8. 말이 2005/09/11 17:34 수정/삭제/ 댓글

    좋군...비가 오니까...유해진 느낌...

  9. BlogIcon 연이랑 2005/09/12 03:58 수정/삭제/ 댓글

    300k~~~~~~g
    >.<

  10. BlogIcon akgun 2005/09/12 09:39 수정/삭제/ 댓글

    말이// 사실 비 안와도 선한 사람이라고오 -_-

    연이랑// 부품 좀 떼어내면 가벼워서 연비도 좋아질텐데...

  11. BlogIcon 하이짱 2005/09/16 21:29 수정/삭제/ 댓글

    우하~~ 실천하기란 쉽지않은데 멋지심~~~~ ^0^/
    그 사람두 황당했던 모양이네... 고맙단 말두 안하다니...
    akgun님~~~ 참 잘했어요~~~~ ^---------------------------^

  12. BlogIcon akgun 2005/09/18 14:24 수정/삭제/ 댓글

    -_-;;
    추석명절 잘 보내고 있지?
    결혼한 여성들에겐 즐겁지만은 않은 명절임을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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