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왕" 그를 처음 안 것은 91년 경이다. 그나 나나 동갑내기 스무살 시절이었고 아직 어리버리한 세상 초년생이었으며, 그만큼 가능성이 무한히 남아있는 나이였다.

정확히는 기억에 없지만 한양대 앞 카페에서 였다.
그 시절, 사랑하던 그녀의 입을 통해서 세세히 들은 그는 한양대 유도 선수였으며 국가대표 유도 선수였고 한국 유도계의 유망주 였으며 잘생기고 훤칠한 키에 매너있고 재미있는 남자다운 남자 였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헌팅을 통해서 '꼬신' 여자가 '나의 그녀' 였다. - 예나 지금이나 운동선수들은 '이쁜 여자'를 밝힌다. -_-;;

한창 혈기왕성한 그 시절의 나는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듣는 그의 행적이 달가울리 없었다. 그녀의 변명으론 그가 나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녀의 '애인'임을 인정하고 있는, 둘은 그저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내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런탓에 내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난 입시에 실패했으며 - 적어도 겉으론 - 재수를 겉어치우고 불안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늦으막한 가출로 방황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엘리트 체육학도에 비할 수가 없는거다.

더욱이 애인이 있는 여자를 대하는 그의 대범함이 나를 더욱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내 나름은 전혀 내색하지 않는 겉모습으로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렇게 '윤동식'이란 이름 석자는 유망한 유도선수보다 '기분 나쁜 녀석' 으로 깊게 남아있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그가 진정한 내 '라이벌'인가는 나 조차도 모호하다. 왜냐하면 그와 나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만난적이 없기 때문이다. - '유도왕' 한테 뒷덜미를 잡혀 내팽개쳐지는 모습을 그녀 앞에서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_-;;

그렇다해도 국제대회의 승전소식을 메스컴에서 듣는 것 보다는 녀석이 귀국하며 챙겨오는 선물과 함께 그녀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여전히 '라이벌' 의식을 불러오게 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에 대한 내 믿음이 깊어가면서 윤동식의 '불운'은 나에게도 안타까움이 된다. 학연때문이라고도 하고 운이 없다라고도 하는 그의 전력은 올림픽 출전이 번번히 좌절되면서 '불운의 유도왕', '비운의 유도스타'이라는 타이틀을 갖게된다. 한국의 시스템은 그놈의 '금메달' 목줄에 다같이 목 메다는 것 아니었던가.
어쩌면 한 여자를 놓고 '승리'했다는 내 자만과 그에 대한 우월감같은 것이 작용했을 테고 그로써 연민같은 것이 생겼는지도 모를일이다.

한동안 '윤동식'이란 이름 석자를 잊고 지냈다. 그 와 경쟁아닌 경쟁을 했던 그녀도 지금 곁에 없는 마당에 '윤동식'이란 이름을 떠올리며 살 이유는 없었다.

그런 그의 소식을 오늘 네이버의 첫면에서 발견했다.
이제는 이종 격투기 '프라이드'로 전향한 그의 소식이 누구보다 반갑다. 비록 첫승을 못했지만 여전히 투지로 '불운'을 떨치려는 모습이 내게 새로운 기분과 자극을 안겨준다.

나도, 그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는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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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oopsmax 2005/10/24 18:06 수정/삭제/ 댓글

    살아있는 한 가능성은 있는 겁니다. '_';
    참, 라이벌이나 장애물이 있어야 사랑이 오래간다고 하던데 역시나.

  2. 대마왕 2005/10/24 18:25 수정/삭제/ 댓글

    어제 경기에서 패하긴 했으나 저 자리에
    서있던 윤동식 선수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죠.
    이번 포스팅 역시 인상적이라는 -_-d

  3. BlogIcon akgun 2005/10/24 22:03 수정/삭제/ 댓글

    oopsmax// '새로운 도전에 대한'가능성 정도로 여겨주세요. (따지냐?) ^.,^;;
    그게 그렇게 해석 되는 건가요? 허들경기는 오래뛰기 힘들텐데 말이죠. -_-;; 뭔가 자극제, 새로운 분위기 같은게 필요하다는데는 동의합니다만...

    대마왕// 난 이종격투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데뷔를 알지도 못했지만 느낌이 남다르다.
    웬지 친한 녀석이 링에서 피흘리고 있는 것을 바로 링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 뭐..감정이야 어떻튼 '불운'을 반드시 떨치길 . 제발!!

  4. zapzap 2005/10/25 00:24 수정/삭제/ 댓글

    계획대로라면...곧 링에서 만나게되겠구나.
    다리 찢기는 시작했나??

  5. 2005/10/25 04:11 수정/삭제/ 댓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6. BlogIcon 미루키 2005/10/25 09:35 수정/삭제/ 댓글

    오늘 신문에서 봤어요.. 심판이 좀 잘못됐다는..

  7. BlogIcon akgun 2005/10/25 10:25 수정/삭제/ 댓글

    zapzap// 그때나 지금이나 급수가 다르다고... 같은 체급이 될려면 20kg은 불려야 하는데 그게 가능 하다고 보냐? 키는 비슷한데 말이야.

    비밀 댓글// 느즈막 아니구요??
    제가 늙으막에 이런 대접이라니...배움에 귀천도 나이도 없는거죠?

    미루키// 언젠가 멋지게 상대를 내다 꽂을 일이 있을겁니다. 그게 엎어치기 한 판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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