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속을 진종일 쏘다닌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돌아오는 길, 화려한 네온싸인과 맥주의 유혹에 이끌려 역 근처의 바에 들른다.

더위와 갈증에 시원한 맥주만한 것도 없지 않은가.

맥주 한 병 홀짝거리다가

옆 테이블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 동남아계 아가씨와 몇마디 얘기를 주고 받는다.

피차 대화라곤 아는 영어단어 몇 개를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도 부족해서 온갖 손짓발짓에 그림까지 동원한다.

그래봐야 여전히 확실한 것은 그녀의 이름 뿐이다.

어쩌면 "Nan" 이란 이름조차 예명일지도 모르지...

맥주 두병에 갈증은 풀리지만 잊었던 피로가 몰려온다.

일어서려는데 Nan이 팔목을 잡는다.

자신과 대화하려면 팁을 줘야한다며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어처구니 없지만 이곳의 문화려니 하고 지갑에 든 40바트를 꺼내어 준다.

"오케이?"

"오케이!"

짧지만 더없이 정확한 한 미디가 오가는 것으로 끝이다.


피곤해서 더는 한 걸음도 걷기가 싫다.

오토바이 택시를 잡는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10바트란다.

주머니엔 탈탈 먼지나게 털어도 5바트 뿐이다.

부족한 5바트 탓에 태워줄리 없다.

5바트...150원...150원....150원....150원

하루의 피로로 녹아들 듯한 걸음을 다시 힘겹게 옮긴다.


배고프던 시절, 주머니 털어 사먹던 쵸코바 "자유 시간" 을 추억하며...

Trackback :: http://rockgun.com/tt/trackback/389

  1. 대마왕 2005/11/07 13:49 수정/삭제/ 댓글

    어머님의 말씀을 어긴 대가는 40바트군요 -_-...

  2. BlogIcon 연이랑 2005/11/07 15:43 수정/삭제/ 댓글

    대마왕님 한테 한표!

  3. zapzap 2005/11/07 15:56 수정/삭제/ 댓글

    그니깐, 몇천원으로 맥주 두병마시고, 아가씨 팁주고도 돈이 남았단 말여?!

  4. BlogIcon akgun 2005/11/07 16:15 수정/삭제/ 댓글

    대마왕// 댓가 치고는 가혹하지 -_-;;

    연이랑// 나쁜 녀석한테 물드시면 안되요.

    zapzap// 그니깐 맥주가 두 병에 160바트, 팁 합해서 200바트! 30곱하면 6000원 되겠다.
    정확히 오늘의 환율을 따져보면 1달러에 1049.5원. 계산해보니까 5128원 나오네.
    싸다고? 그럼뭐해. 128원 2전 모잘라서 걸어왔다는게 중요 -_-;;

  5. BlogIcon oopsmax 2005/11/07 22:21 수정/삭제/ 댓글

    모친껜 비밀로 하시는 게 좋겠어요.
    40바트 주시면 구석에 쭈그러져 함구불언하겠습니다.
    서태지씨가 난("Nan")양을 알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난 알아요"라고...ㆀ

  6. BlogIcon akgun 2005/11/08 02:47 수정/삭제/ 댓글

    당연합니다. 저희 모친께는 반드시 함구불언 해주세요. 발설했다간 함무라비법전식으로 처벌하겠습니다.
    서태지가 난양을 알고있었다면 팁을 좀 깍아도 될 걸 그랬군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