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농사꾼의 아들로 자랐다.
그런탓에 누구보다 농사(벼농사, 쌀농사)를 짓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안다. -뭐 부모님의 증언에 의하면 "뺀질이 둘째는 들에서 일하시는 당신들의 모습이 저 멀찍이 보이기만 해도 언제나 산을 빙 돌아서 도망갔다" 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내가 그리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자랐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렇다해도 농사꾼들의 힘든 생활은 충분히 알고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단한 하루하루가 내 삶을 둘러싼 전부였으니까!
난 아직도 밥을 짓기위해 쌀을 씻다가 한 톨의 쌀이라도 씽크대 하수구로 흘러들게 하지
않는다 못한다. 그리고 여전히 밥을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릇에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는다. 그러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 어릴적 보았던 조심조심 쌀을 씻으시던 어머니, 흘린 밥알 한 톨까지도 다 주워먹게 하셨던 엄한 아버지의 교육탓이다. 아니 이건 교육이기 이전에 우리네 농사꾼들의 1년 고생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결과다.
'음식 남기면 죽어 지옥가서 남긴거 다 먹는 벌을 받는다'는 무시무시ㅡ.,ㅡ한 얘기는 안 믿었다 하더라도...
수확이 끝난 휑한 들판에 저녁노을이 다 지도록 떨어진 한 톨의 이삭을 줍던 내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 이런 내 습관과 버릇이 꼭 궁상이라고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 쌀 개방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
의원나리들의 고민이 어떠했을지는 나로썬 알 길이 없다. 다만, 소위 몇 만원짜리 양식을 고품격으로 여기는 고매한 취향은 '식성'이니 무시하고 식성이 바뀌면 취향도 바뀌고 개념도 바뀌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땅의 주식은 쌀이라는 것만은 알고있길 바란다.
기름은 이땅에서 한 방울도 안 난다니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게 당연하다. 덕분에 유가가 폭등하면(부시의 농간이든 지랄이든) 이 땅이 들썩이는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름을 안 쓰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니 울며 겨자 먹기다.
기름은 그렇다 치지만 쌀은 아니다. 이땅에서 쌀은 충분(?)히 생산 된다. 이 땅의 농민들이 그 고생을 해가며 열심히 생산 중인거다. 그렇다고 농민이 부자인가? 국민의 주식을 거머쥐고 흔드는 악덕지주인가?! 그들한테 보릿고개 넘기려고 비싼이자로 쌀 빌어 먹는가?! 쌀이 비싼가?
그동안의 쌀은 국가가 수매라는 방법으로 가격을 조절해왔다. 모두가 먹는 쌀의 가격 변동폭이 커지면 그만큼 가계의 부담이 커지고 물가 변동폭도 커지겠지. 그것을 조절하고 열악한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쌀을 수매함으로써 가격 변동을 조절해왔던거다. 모두가 무지 비싸게, 혹은 무지 싸게 쌀을 사지 않았듯이 농민도 부자는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경쟁력을 잃게된 첫 걸음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이것 역시도 앞으론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경제논리를 붙여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도태되어야 마땅한 것일까?
농사는 첨단 산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쌀을 키워낸다는 행위는 자연 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인 탓이다. 한 알의 쌀을 키워내는 기본 조건으로 이 땅은 제약 사항이 많다. 좁은 농토, 제한적 기후조건 하에서 우리의 농민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농토는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터전이기 이전에 이 땅이 살아 숨쉬는 자연조건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앞으론 어떤 쌀로 밥을 지었느냐 만으로도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됐다. 불량먹거리 파동으로 시끌시끌거릴 껀수 하나 더 늘었다고, 겨우 선택의 고민꺼리 하나가 늘어난 것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쌀개방 문제로 농민은 연일 들끓고 분신 자살로 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은 인터넷 댓글놀이에 희생된 한 넷티즌 보다도 주목받지 못한다.
함박눈이 내려도 그들은 포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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