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잠깐 정원에 나가서 낙서를 하고 있었다. 주인집 부인과 용역직원이 몇 명 와서 잔디를 깎고 정원을 관리하고 있는 탓에 좀 소란스러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만큼 수선스런 한 켠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쟤네 문화는 그런갑따~' 하겠지 싶어 그냥 묵묵히 낙서에 몰입했더랬다.
주인집 부인은 학교 선생이고 새로 지은 이 집에 애착이 많은지 세를 놓고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덕분에 주말만 되면 남자들 뿐인 집안식구들이 빠짝 긴장을 하곤하는데, 그 사감선생스런 무뚝한 표정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말을 늘어놓는 그런 타입이거든. 그날도 챙 넓은 모자와 어깨까지 덮는 손장갑까지 준비해서 정원 구석구석을 직접 손질하며 돌아다니더라. 참 신경이 쓰이도록 만들어 주시는 아주머니다.
나야 뭐 그런데 맞장구(?)를 쳐주는 타입이 아니니 무시하고 내 볼일만 보곤하지만. '세를 주셨으면 그냥 잊고 사세요. 정 불안하면 본인이 직접와서 사시지 왜 세는 주셨답니까!' 속으로만 궁시렁 거리면서...
그렇게 한참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볼일을 다 끝낸 부인이 자신의 짐을 정리하며 스케치북에 코박고 앉아있는 나를 빤히 내려다 본다. 그리곤 친근한 목소리로 한 마디 건넨다.
"뷰리플" ('당신 그림은 당신의 외모와는 다르게 그럭저럭 볼만하군요')
"땡큐" ('과찬입니다만. 내 그림이 보기 좋다면 그것은 제 어줍잖은 손재주탓이 아니라 나의 정원, 그리고 당신의 정원이 아름다운 까닭입니다')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진한색 썬그라스를 눈에 가져가며 돌아선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아비백!" ('다시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집 깨끗이 쓰고 웬만하면 실내에서는 흡연을 삼가하라!')
가벼운 목인사에 미소를 곁들여 화답해준다.
"바이바이!" ('잔소리 그만하고 얼른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정 오겠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횟수를 줄여주세요!')
그렇게 짧은 대화는 많은 뜻을 남기며 끝이났다.
어느새 기운 오후의 햇살은 앉아있던 내 자리에도 따가운 볕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