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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반이 넘어서야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보내는 신호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보내는 신호에 더 신경을 쓰고 있던 탓이다. 시간을 아끼려 식사는 배달을 시키기로 한다. 우리는 배달의 기수다 (아 이젠 지친다)
"제육볶음 하나요"
"제육 하.나.요??"
(분명 전단지엔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이라고 써있는데, 뭐냐 그 억양은?)
"네에...그리고 현관에 잠금장치가 있으니 오셔서 전화 주세요"
"그럼 전화번호를 주셔야죠~"
('전화번호 주시겠어요?' 는 작업할 때만 쓰는 말투인건가?)
"019-269-""96이요~"
벨이 울린다. 서둘러 4층에서 1층까지 뛰어 내려간다. 이놈의 건물은 엘리베이터도 없다.
문이 열리고, 더운 날씨에 우비를 입은 배달원이 날 빤히 쳐다보더니 철가방을 내민다.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지만 기온은 높고 그는 우비를 입었다. 그리고 4층까지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뭐 까짓껏' 받아 들고 돌아선다.
"계산은요??"
"...."
지갑이 사무실 책상위에...
4층까지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앞서 가는 나를 우비입은 남자가 묵묵히 따른다. 그러나 철가방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다.
우비입은 남자를 돌려 보내고 철가방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다. 뭔가 허전하다. 국물이 없다. 제육볶음은 퍽퍽해서 얹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국물 가져다 달라는 전화는 생략한다.
정말 그렇다. 난 요즘 너무 순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