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것을 구체적으로 - 아무런 대책도 현실성도 없었고 그저 눈에 씌운 두툼한 콩깍지 때문에 떠오른 망상에 가까웠으니까 '구체적'이란 표현은 정확치 않지만 - 떠올린 때는 스무살의 달콤했던 연애시절이었다. 육체적으로 더이상 성장할 것이 없으니 - 185이상 자라도 곤란 - 그에 맞춰 정신도 다 자랐으리라 믿었던 우매한 시절이었고 , 주변에서도 툭하면 "서른은 되어 보인다"라는 말로 내 어른됨을 인정토록 종용했더란 말이지. 물론 그것이 외모를 위한 평가였음을 모르진 않았지만 젊은 혈기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그 젊은 혈기로 마주한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서른은 되어 보인다'라고 믿고있던 나를 순식간에 스스로 '핏덩이'로 여기도록 하는 유려한 화술과 연륜가득한 표정을 보여주심으로 "네, 제가 먼저 정리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내 입에서 이끌어 내셨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나는 그러고도 몇 년을 더 만났으니까 그 분이 보시기엔 '역시 안 될 놈' 이었음이 분명하다.
서른에 즈음해서 결혼에 대한 첫 망상이 사라졌으리라 판단하신 내 부모님께서는 은근히 결혼에 대한 압박을 가하셨다.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똥차'가 먼저 빠져줘야 한다는 명쾌한 논리셨지만 이미 서른도 '핏덩이'라는 의식이 깊게 각인된 나를 설득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러면 서른다섯에.."라는 약속으로 갈등은 일단락 되는 듯했다. 시대에 수긍하는 부모님의 양보와 아직은 멀었지 라는 나의 얄팍한 회피가 일궈낸 성과였지만 역시 오래 사신 분들의 연륜을 어찌 이기랴. 그 5~6년이란 시간은 눈깜짝이더란 것을 그 분들은 이미 가늠하고 계셨더란 말이지.
약속한 기한은 다가오고, 이제 무슨 계획서를 가지고 재협상의 자리에 나설 것인가 심히 고민스럽다. 유리한 계약을 따내려면 반드시 화끈한 조건을 제시해야함이 분명한 것일진데... 돌아보니 남은 카드라곤 되다만 스트레이트 카드에 원페어 뿐이로구나.-.,-;;
누군가 내게 빠진 에이스카드♠ 빌려줄 사람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