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2004, 폴 해기스) : 인종차별에 관한 영화지만 나야 뭐 인종차별에 대해 별로 감이 없으니 그냥 '사람들 사이의 관계' 정도로만 이 영화를 봤다. - 사실 따지고 보면 인종 차별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단일민족이라고 박박 우기는 우리네 정서도 이미 인종차별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대접과 그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내 시선을 문득 깨닫게 될 때, 나 역시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더욱이 이곳에서 직접 섞여서 살다 보니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백색 피부의 여성들은 황색 피부의 남성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라는 거다. 백인 남성들이 황인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수준의 1/10도 안 된다는 느낌인데, 이건 단순히 남성,여성의 동물학적 - 우성인자를 고르려는 - 차이만으로 규정하기엔, 더해서 외곡된 오리엔탈리즘으로만 규정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거든. - 예가 적절치 못했다. 인정한다. 그냥 그녀들이 '안 놀아줘서 삐졌다' -.,-;;
인종차별은, 맨 위에 한자를 (동치미 국물처럼) 곁들인 단어들의 실생활 실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좀 심하게 실천하는거지. 이유와 환경이 어떻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만드는 수많은 감정들의 표출이 시작이지 않겠는가.
피부톤과 혈통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나와 다른 문화', '나와 다른 취향'에 대한 것만으로도 무시 못할 저항과 반감을 가지고 있는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다름'을 고쳐주는게 자신의 미덕과 의무인양 구는 모습을 본다. 조금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말이지.
얘기가 심하게 삼천포로 빠지셨다. 아무튼 이 영화는 인종차별 영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영화다. 심하게 극적인 설정이 거슬릴 수 있으나 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는 아니며, 한국인을 폄훼하는 내용이 있으나 이 역시 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다. 영화에 느긋이 몰입해 주신다면 '열쇠 수리공과 그녀의 딸' 시퀀스에서 제대로 감동을 선서받을 것이다.
몇 번을 봐도 이 장면 참 잘 만들었다.
근래에 본 영화 중에 제일 인상깊은 영화다. 미국산 영화를 몇 번씩이나 본게 얼마만인지... .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음악들이 잘 녹아들어 있는 것도 아주 좋고.. 많은 삶들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관계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은 연출도 보기 좋다.
근데, 요즘 '영파라치'들이 호황이라는데 화면캡쳐만으로도 그들의 타킷이 되는 건가? 결국 또 사식 걱정을 해야 되는거야? -.,-;;